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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수화물 양 같아도… 사람마다 혈당 올리는 식품 따로 있다

윤석금 2017. 12. 19. 09:35

[의학자문위원이 쓰는 건강 노트] [3] 개인 맞춤형 영양학 시대

사람마다 유전·장내 환경 제각각… 음식별 혈당 상승 폭·속도 차이 커
섭취 2시간 후 혈당 기록해 확인… 환자 스스로 좋고 나쁜 것 가려야


조영민 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내분비내과 의사들에게 큰 충격을 준 논문이 있었다. 2015년 세계 최고 기초과학 연구소로 꼽히는 이스라엘의 와이즈만 연구소에서 나온 논문이다. 음식물 섭취에 따른 혈당 반응을 연구해 본 결과, 어떤 음식을 먹고 나서 혈당이 올라가는 속도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한 개인에서는 일관되게 같지만 사람 차이가 크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똑같이 20g의 탄수화물이 들어 있는 바나나와 쿠키가 있다고 하자. 김군은 바나나를 먹으면 혈당이 올라가고 쿠키를 먹으면 혈당이 올라가지 않았다. 반대로 이군은 바나나를 먹으면 혈당이 올라가지 않고, 쿠키를 먹으면 혈당이 올라갔다. 와이즈만 연구 이전까지 우리는 음식의 탄수화물 함량에 따라 혈당 올라가는 게 결정되는 줄 알았다. 이렇게 사람마다 다를 줄은 생각지 못했다.

이런 개인 차이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와이즈만 연구소 과학자들은 각각 다른 체형, 혈액 검사 수치, 신체 활동, 장내 미생물 조성 차이에 따라서 음식 섭취 시 혈당 반응이 개인차를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사람마다 다른 장내 미생물 조성이 혈당 반응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나아가 연구진은 알파고와 같은 기계학습을 통해서 개인별로 음식에 따른 혈당 반응을 정확히 예측해 냈다.

◇당뇨병에 일률적으로 좋은 음식 없어

내분비내과 의사인 내게 매일 많은 당뇨병 환자들이 "혈당 조절을 위해 어떤 음식이 좋나요?"라고 똑같은 질문을 한다. 음식을 먹고 영양은 섭취하되 혈당은 천천히 올라야 당뇨병 관리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에 시중의 서점에 가보면 당뇨병 환자를 위한 음식 레시피가 책으로 많이 나와 있다. 과연 당뇨병에 일률적으로 좋은 음식이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어떤 음식이 혈당 조절에 좋다고 말하는 것은 와이즈만 연구소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본다면 일종의 전체주의 시각이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유전적 배경이 다르고 장내 미생물이 달라서 특정 음식에 대한 반응이 제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혈당 조절을 위해 어떤 음식이 좋은가?"라는 일반적인 질문은 이제 잊어야 한다. "혈당 조절을 위해 어떤 음식이 나에게 맞는가?"로 물어야 옳다.

/그래픽=김충민 기자
술을 마시면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이 있고 전혀 색이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우유를 아무리 마셔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있고 우유를 조금만 마셔도 배탈이 나는 사람이 있다. 커피를 아무리 마셔도 잠자는 데 전혀 문제없는 사람이 있고, 한 모금만 마셔도 가슴이 벌름거리고 잠도 못 자는 사람이 있다. 이렇듯 같은 음식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나타내는 반응은 제각각이다. 음식 섭취에 따른 혈당 반응도 마찬가지다.

◇혈당 올리는 음식 알고 맞춤식 식이요법을

그렇다면 당뇨병 환자가 식후 혈당을 조절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도의 기술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음식을 먹을 때마다 식후 혈당을 기록해 보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나에게 어떤 음식이 식후 혈당 조절에 가장 좋은지 따져보면 윤곽을 잡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당뇨병 환자 최씨가 혈당 조절을 위해 쌀밥 대신 현미밥을 먹으면 좋을지, 홍시·고구마·감자는 먹어도 될지 궁금하다면 이런 음식을 섭취한 후 2시간을 전후해서 혈당을 재 보면 된다.

어떤 음식은 혈당이 많이 오르고 어떤 음식은 혈당이 덜 오르는 것이 판명 나면, 결과에 따라 음식 섭취를 조정해 볼 수 있다. 당뇨병 전단계로 불리는 내당능장애에 있는 사람들도 장차 당뇨병이 걱정된다면 혈당 측정계를 구해서 자신에게 유독 혈당을 올리는 음식이 뭔지 찾아 맞춤식 식이요법을 하는 게 좋다.

이제 책과 매스컴에 나오는 영양 정보가 나에게 모두 통하리라는 생각은 접어라. 어떤 이가 뭘 먹어서 혈당 관리에 효과를 봤다는 말도 솔깃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나한테 맞는 음식이다. '개인 맞춤형 영양학' 시대가 열리고 있다. 당신만의 음식을 찾아서 혈당도 관리하고, 음식도 즐기길 바란다.

[조영민 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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